이 글에서는 2017년 간행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에 묘사된 두 역사,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과 난징 학살 사건에 주목하여, 현대사회 속 개인의 삶의 양식을 그리며 그 내면을 묘사하는 작가로 대표되던 하루키가 사회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그리고 그가 작품 속에서 역사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한일 두 나라의 언론과 지식인의 반응을 통해 한일관계의 현주소 또한 살펴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두 역사를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그렸지만 그 역사는 ‘원경(遠景)을 그린 풍경화’처럼 어슴푸레하고 모호하고 불투명하며 현실미가 없다. 이는 가해자 또한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가해자 중심의 역사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의 태생적 한계와 그 자신도 알게 모르게 일본사회에 뿌리내린 “피해자 사관”을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