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담론’은 어떻게 생성됐는가? 이 글은 그 생성의 지적·정치적 역사를 추적하려는 시도이다. 1930년대와 40년대 전반까지의 기간에 여성들이 전쟁에 동원된 역사적 과정과 실태를 파악하려는 역사학적 연구라기보다는 전후 ‘위안부’를 둘러싼 담론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추적하려는 것이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둘러싼 논쟁 등에도 불구하고 ‘위안부’는 역사적 사실이고, 실제로 존재하는 여성들이다. 이것이 ‘위안부’에 관한 첫 번째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성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들이 전후 사회에서 이슈로 인식되고 논의되는 것은 결코 자동적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1945년부터 1970년대까지 거의 30여 년간 이들의 존재에 대해 침묵이 강요됐다는 것 또한 중요한 사실이다. 이 두 번째의 사실은 전후 사회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야기한다. 왜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은 전후 역사에서 망각되고, ‘위안부’ 여성들은 침묵을 강요받았는가? 세 번째의 사실은 ‘위안부’를 둘러싼 망각과 침묵의 성격이 초국가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를 뒤덮은 초국가적 침묵이 있었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침묵이 깨지기 시작하면서 ‘위안부’ 담론도 초국가적으로 전개되었다. 일본에서의 연구가 한국에서의 관심을 자극하고, 한국에서의 활동이 다시 일본의 논의를 유발하는 담론의 교류가 유기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유기적 담론 전개는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포함하여 서구 사회까지 포괄하는 초국가적 확장성을 띠게 되기도 했다. ‘위안부’ 담론의 이러한 초국가적 전개과정을 추적하는 것이 이 글의 의도이다. 이러한 접근을 취하는 이유는 ‘위안부’ 담론에서 드러나는 초국가성이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구성에 핵심적이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초국가성을 이해하는 것이 ‘위안부’ 문제의 관리와 해결에 불가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