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이후 북한은 본격적으로 핵무기개발을 추진하였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반도는 수시로 핵위기와 전쟁위기에 휩싸이곤 했다. 이제는 김정은 정권이 2016년 1월 제4차 핵실험, 9월 제5차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핵위협을 가속화함으로써, 사실상의 핵보유국의 지위를 획득할 정도로 한반도의 핵위기는 한치 앞을 예측키 어려울 정도로 가중되고 심각해졌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남북한 분단체제의 역사에서 전개된 핵개발의 정치를 탐구할 필요성이 생긴다. 특히 그 동안 국내에서 잘 연구되지 않은 박정희 정권의 핵무기 개발 시도와 그에 대한 미국의 대응을 중국학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분석하는지를 들어보는 것은 의미있다. 남한 핵개발의 역사적 지정학을 살펴봄으로써 현재의 동북아정세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발표: 량즈 (중국 화동사범대학 역사학과 교수)
토론: 우동현 (카이스트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발표 : 중국어 / 토론: 한국어 / 한중통역제공
동북아시아센터는 10월 14일(토) “한반도 제1차 핵위기: 1970년대 한국의 핵‧미사일 개발과 미국의 대응”을 주제로 중국 화동사범대 역사학과 량즈(梁志) 교수의 특별 강연을 진행하였다. 량즈 교수는 냉전과 데탕트, 미국의 아시아 외교정책을 연구하는 역사학자로, 미국의 문서자료에 대한 접근을 통한 실증적 방법으로 1970년대 한국 박정희 정권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미국정부의 대응에 대해 분석하였다.
량즈 교수는 기존 연구들은 미국의 한국 핵개발 억제 문제에 주로 집중했으나 미사일 개발 문제는 소홀히 다루었다고 지적하며, 관련된 미국의 외교 전략에는 미국 국내적 요인(경제적 이해관계, 정부 내부의 이견), 외교 대상국 요인(한국의 안보문제), 제3국(프랑스, 영국, 캐나다, 대만 등)의 이해관계 요인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음을 새롭게 보여주었다. 또한 박정희 정권기에 한국이 핵‧미사일 개발을 추진하게 된 것은 한반도의 군사적 위협 상승, 미국의 남한안보 약속에 대한 의구심,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핵무기의 “구세주” 이미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더하여 더욱 결정적인 것은 ‘박정희 대통령 주변의 과학자와 방위산업복합체(물질적 이해관계와 민족주의 정서 결합)”였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한국 핵개발에 대한 미국의 대응 전략을 “협력, 위협, 차단”의 병용으로 요약하였다.
지정토론을 맡은 카이스트 우동현 교수는 해당 주제에 대한 자료가 거의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 연구자들은 맥락을 통한 추정에 의지하는 면이 많은데, 그런 면에서 량즈 교수의 연구가 의미 있다고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