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의 영화는 남다르다. 영화를 잘 만들거나, 장르적으로 특이하다는 것이 아니다. 20세기의 역사를 통해 사람들이 영화를 접하는 방식, 영화라는 매체가 전달되는 방식이 특이하기 때문이다. 제국과 식민지로 형성된 이 공간에서 영화란 여가 시간에 즐기는 매체가 아니었다. 제국과 식민지가 근대와 전근대의 이분법으로 치환되면서 영화는 제국이 식민지인들을 향해 자신의 말과 몸짓을 보여주는 수단이었다.
그렇기에 동아시아의 많은 사람들은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지 않았다. 반대로 영화가 사람들 사이로 왔다. 기차에 실리고, 트럭에 실리며, 비행기에 실린 영화 상영 도구들은 마을과 학교의 가운데로 사람들을 모아 영화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영화들은 기차로 상징되는 식민지기 제국의 위용을 드러내고 기차를 활용한 새로운 생활을 선전하며 식민지인들을 설득하려 하였다. 전쟁과 냉전의 시기에는 자동차로 상징되는 미국의 헤게모니를 드러내고 자동차를 사용하는 새로운 생활을 선전하며 주민들을 설득해 나갔다. 냉전을 넘어서자 이제는 비행기가 철도와 자동차의 자리를 대신하였고, 자동화(automation)이 새로운 선전을 선전하며 주민들을 설득해 나갔다.
20세기 동아시아는 매우 극적인 경제 성장을 특징으로 한다. 그런 만큼 지역 내부에 다양한 근대-전근대가 공존했고 이로부터 형성된 권력 관계는 영상 매체를 통하여 주민들을 설득하고 규율하는 장치로 기능하였다. 김한상의 책 Cine-Mobility는 이처럼 영상의 이동과 영상 속의 이동을 통해 20세기 동아시아의 모빌리티, 문화, 생활 규율을 잘 꿰어낸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