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태(인천대학교)
올해는 2020년 ‘소강사회(중진국)’ 달성을 선언한 중국이 2049년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향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해이다. 또한 2021년은 코로나19의 충격을 딛고 일어나는 해이기도 하다. 작년 상반기 코로나19로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대폭 하락했으나 하반기에 V자 반등에 성공하면서 올해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3월 양회에서는 ‘정부업무보고’, ‘국민경제와 사회발전 제14차 5개년 계획과 2035년 비전 목표 요강’ 등 향후 중국 경제의 향방을 제시하는 중요 문건들이 쏟아졌다. 양회에서 나온 경제 분야의 핵심은 ‘안정적 성장 유지’와 ‘외부 도전에 대한 적극적 대응’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이를 통해 코로나19와 미중경쟁으로 인한 대내외 위기에 대처하고 2049년 강대국 건설을 위한 장기전에 본격 돌입하고자 한다. 이에 이 글에서는 양회를 읽는 중요 키워드로 ‘경제성장률 설정’, ‘자립적 기술혁신’, ‘쌍순환 전략 구상’을 선정하고 이를 통해 중국 경제의 방향을 분석하였다.
절묘한 경제성장률 설정: 6% ‘이상(以上)’
중국 정부는 2021년 경제성장률을 ‘6% 이상’으로 설정했다. IMF를 비롯한 국내외 기관 예상치(8~9% 내외)보다 매우 낮은 보수적인 목표다. 중국 경제는 2020년 4분기 성장률 6.5%를 기록하면서 코로나의 충격을 거의 극복했다(그림1). 게다가 2020년 국내총생산이 급감했기에 2021년 성장률은 ‘기저효과(base effect)’로 인해 급상승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성장률 목표를 이렇게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성장률 목표치가 ‘6%’가 아닌 ‘6% 이상(以上)’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6% 이상으로 설정해 놓았으니 실제로는 8~9%가 되더라도 상관은 없다. 즉, 6%는 최소치이며 그 이상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아래의 해석이 가능하다.
그림1. 2018~20년 중국 분기별 경제성장률 | 그림2. 2016~20년 중국 연도별 경제성장률, 신규고용수 |
자료: 중국 국가통계국 |
첫째, 2021년 적절한 고용을 창출하고 사회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최소 6% 성장이 필요하다는 중국 정부의 판단이 반영된 것이다. 6% 성장률은 2019년 성장률 6.1%와 유사하다(그림2). 그해 중국은 6.1%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신규고용 1,352만 명을 달성했다. 그러나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해 성장률은 3.2%, 신규고용은 1,186만 명에 그쳤다. 중국은 매년 900만 명에 이르는 대졸자가 배출되고 수억 명의 농민공이 도시에서 일하는 나라다. 저성장과 저고용이 지속되면 사회불안으로 이어진다. 2021년 재정 정책도 2020년보다는 다소 강도를 낮췄지만 적극적 기조를 유지하는 이유도 이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결국 성장률 최소치 6%는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한 중국 정부가 마지노선으로 설정한 것으로 봐야 한다.
둘째, 중국 정부가 경제 운용을 경제의 양적 성장보다는 질적 전환에 중심을 두겠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목표 성장률은 국내외 모든 경제 주체들에게 신호(signal)의 역할을 한다. 특히 고과(考課)와 승진에 목맨 지방 정부 공무원들이 이에 민감하다. 중앙정부가 높은 성장률을 제시하면 이들도 앞다투어 지역 경제성장률 제고에 발 벗고 나설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부작용을 초래한다. 중국 경제의 고질병으로 지적되는 지방 정부 부채증가, 좀비 국유기업 양산, 부동산 가격 폭등, 환경 오염 심화, 부패 문제 등이 발생한다. 경제·산업 구조조정으로 질적 발전을 이룩해야 하는 중국으로서는 별로 달갑지 않다. 결국 목표치 6%는 중앙이 지방 정부에게 ‘무리하지 말고’ 적절한 성장과 고용을 달성하면서 질적 전환에 힘쓰라는 지시나 다름없다. 리커창 총리가 “올해 기대 목표를 6% 이상으로 설정한 것은…각측이 역량을 집중하여 개혁과 혁신을 추진하고 질 높은 발전을 추진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라고 부언한 것도 이 때문이다.
셋째, 중국 정부가 미국 등 국제사회를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않으려고 성장률 목표를 낮게 제시했을 가능성도 있다. 글로벌 경제는 코로나19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이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중국은 빠르게 회복하면서 2020년 주요 경제국 중에서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중국을 코로나19의 발원지로 비판해 온 미국의 입장에서는 거슬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미중 분쟁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으로서는 코로나로 인해 세계가 고통받고 미중 분쟁도 여전한 상황에서 굳이 깃발을 높게 치켜들 필요는 없다. ‘이상(以上)’이란 표현으로 상한(上限)은 열어두고 6%란 하한(下限)만 설정한 것은 이런 상황을 고려한 절묘한 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정부는 하한만 있는 열린 목표 설정으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제공하였다. 다만 중국 정부도 고작 6% 달성에 만족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가 실제로 염두에 두고 있는 성장률은 얼마인가? 류쿤(劉昆) 재정부장의 발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류부장이 제시한 2021년 재정적자율은 3.4%, 재정적자 3.57조 위안이다.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2021년 중국의 명목GDP는 111.6조 위안, 명목GDP 성장률은 8.9%이다. 2021년 2월 소비자물가지수 기준 –0.2%(월간), 1.58%(년간)를 기록하고 있는 물가상승률에 큰 변화가 없다면 2021년 경제성장률은 7~8% 정도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7%대 성장이 중국 정부가 내심 염두에 두고 있는 경제성장률인 것이다.
더 간절해진 기술혁신 의지: ‘10년에 칼 하나를 갈 듯(十年磨一剑)’
중국 정부가 기술혁신을 강조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지나친 외자기업 및 외국기술에 대한 의존을 경계하고 자립적 기술역량 강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이번 양회에서 중국이 이를 더욱 강조하고 있는 이유는 이전보다 절박하기 때문이다. 미중 분쟁은 반도체 등 미국 중심의 글로벌 첨단기술 네트워크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제 중국은 불가피하게 자립적 기술혁신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 리커창 총리는 “중국 현대화 건설에서 혁신의 핵심적 지위를 견지하고 국가발전에서 과학기술의 자립자강을 전략적 버팀목으로 삼을 것”이며 “관건핵심기술에 대한 난관공략전을 잘 치루겠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리총리는 기초과학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10년에 칼 하나를 갈 듯(十年磨一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는 당나라 시인 가도(贾岛)의 시(詩) ‘검객(剑客)’에 나온 구절로서 일견 핵심 기초과학연구의 중장기성과 어려움을 강조한 것처럼 보이지만, 미중분쟁 속에서 중국이 첨단기술의 검(劍)을 날카롭게 닦아 자신을 핍박하는 미국과 한판 대결을 벌이겠다는 의지로도 보인다. ‘검객’의 마지막 구절이 검객이 칼을 꺼내 보이며 ‘어디 억울한 일 당한 사람 있소?(谁有不平事)’로 끝나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여하튼 중국은 자생적 혁신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 방안을 준비하였다. 14.5 계획 기간 국가 R&D 투입 연평균 7% 이상, 2020년 대비 중앙 정부의 기초연구 R&D 지출 10.6% 확대, ‘과학기술혁신 2030년 중점 프로젝트’ 가속화, 국가급 R&D 센터와 혁신시범구 건설, 기업 R&D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이 제시된 정책들이다. 2015년의 ‘중국제조 2025’와 같이 떠들썩한 목표는 아니지만 모두 내실 있는 방안들이다. 육성 첨단산업과 첨단기술로는 14.5계획의 8대 산업(희토류 등 첨단신소재, 고속철 등 중대기술장비, 스마트 제조 및 로봇기술, 항공기엔진, 베이더우 위성항법시스템, 신에너지 자동차 및 스마트카, 첨단의료장비 및 신약, 농업기계장비)과 2035년까지 완성할 7대 기술(인공지능, 양자정보, 집적회로, 뇌과학, 유전자 및 바이오기술, 임상의학 및 헬스케어, 우주·심해·극지 탐사)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첨단산업과 관련해서 리총리의 “산업사슬, 공급사슬의 자주적 통제능력을 강화하고”, “산업기반의 고급화와 산업사슬의 현대화를 추진한다”는 언급도 주목해야 한다. 미중분쟁으로 반도체 등 주요 핵심 제품에 대한 글로벌가치사슬(GVC)에서 배제될 수 있기에 중국은 자생적 기술발전을 추진하면서 국내가치사슬(NVC)이나 지역가치사슬(RVC)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중국이 이전처럼 핵심기술이나 글로벌가치사슬에서 서방의 하위 파트너로 남겠다면 무리한 기술자립에 나설 필요는 없다. 그러나 2049년 사회주의 강국을 꿈꾸는 중국공산당에게 핵심기술의 자국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향후 인공지능(AI), 빅데이터(BT), 차세대 이동통신(5G, 6G), 반도체, 우주항공 분야 등 ‘관건핵심’ 기술분야에서 중국의 총력전이 예상된다.
외부 환경 악화에 대한 적극적 대응: 쌍순환(双循环) 전략과 중력장(引力场) 강화
리커창 총리는 2021년도 중점업무를 소개하면서 “내수 확대를 계속 전략적 기점으로 삼고 국내시장의 잠재력을 남김없이 동원한다”라고 언급하였다. ‘내수 확대 전략’ 역시 중국 정부의 오래된 레퍼토리다. 중국은 이미 12.5계획(2011~15)에서 ‘내수 주도 경제로의 전환’을 밝히면서 특히 소비 진작에 중점을 두고 정책을 펼친 바 있다. 당시 2007~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세계 수출이 부진하자 내수 진작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보통 오래된 정책 카드를 다시 꺼내는 이유는 그동안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새로운 환경의 도래로 재추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두 가지에 모두 해당한다. 우선 중국은 13.5계획(2016~20)에서 내수 확대와 관련된 지표인 ‘서비스업 부가가치 비중’과 ‘도시민 1인당 가처분소득 증가율’ 달성에 실패했다. 중국은 코로나19 와중에서도 25개 목표 지표 중 단 4개만 달성에 실패했을 만큼 꽤 선방했으나 내수 확대와 관련된 지표 달성에 실패한 점은 뼈아팠다. 그리고 2010년대 초중반과 비교해서 중국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 크게 나빠졌다. 주지하다시피 최근 미중 분쟁 등 반세계화 경향이 강화되면서 그간 중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한 글로벌 무역·투자(가치사슬)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이런 경향은 필연적으로 내수 확대 전략의 필요성 강화로 이어진다.
다만 중국이 지금 꺼내든 내수 확대 전략은 이전과 크게 다르다. 이는 14.5규획에 대한 리총리의 언급에서 잘 드러난다. “내수확대 전략을 공급측의 구조개혁과 유기적으로 결부시키고 혁신에 의한 발전과 질 높은 공급으로 새로운 수요를 유도하고 창출한다”는 설명은 2015년부터 본격 추진해온 ‘공급측 구조개혁’을 내수확대 전략과 결합시키겠다는 것이다. ‘질 좋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논리인데, 대외경제와의 연결 고리가 약화된 상황에서는 국내 기업이 공급측 구조개혁을 통해서 질 좋은 공급을 해줘야 한다. 이로서 그동안 일견 분리되어 추진된 수요 확대와 공급 개혁을 통합적으로 연계하여 선순환을 형성하고자 한다. 국내 경제의 두 주체-수요와 공급-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국내대순환’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리총리는 “국내대순환에 입각하여…글로벌 요소와 자원을 유치할 수 있는 강력한 중력장을 형성함으로써 국내와 국제 쌍순환을 촉진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바로 강대한 국내시장을 강력한 ’중력장(引力场)‘으로 활용하여 외부 자원을 끌어들이겠다는 ’쌍순환‘ 전략이다(그림3).
그림3. 쌍순환 개념도 |
자료: https://m.hexun.com/news/2020-09-02/201987419.html |
다소 암호처럼 들리는 이 전략은 중국이 처한 외부 상황과 결부하여 이해해야 한다. 쌍순환 전략은 외부 위기에 대한 중국식 대응이다. 미중 분쟁으로 인한 수출경쟁력 악화, 대외투자의 어려움 가중, 고기술 제품의 수입 제한, 첨단산업의 외자 유치 제한 등을 국내대순환 활성화로 만든 강대한 국내시장의 매력으로 극복하겠다는 방안이다. 그간 중국이 첨단기술을 습득하는 주요 방법이 적극적인 해외투자(M&A), 외자기업의 유입, 자체기술 개발이었으나 선진국에 대한 해외투자는 미중 분쟁으로 쉽지 않다. 따라서 중국은 매력적인 국내시장을 형성시켜 외부에서 스스로 들어오게 하고자 한다. 나가서 취하기 어렵게 되었으니 알아서 들어오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특히 미중 분쟁의 본질은 기술 패권 경쟁이기에, 중국은 외부의 첨단기술 요소들을 들여오고자 노력할 것이다. 최근 금융시장 개방, 첨단산업에 대한 외자 우대 조치의 유지 및 강화, 외국인 투자 네거티브 리스트의 축소, 커촹반(科創板·과학혁신판) 개설 등의 정책이 이에 부합한다. 결국 쌍순환 전략은 외부 환경의 악화 속에서도 자신의 강력한 중력장을 활용하여 외부 요소를 유입시켜서 첨단기술과 산업의 자립 발전에 활용하겠다는 의미다. 그 중력장이 강대한 국내시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중국의 전략에 대해 한국은 고민하고 있는가?
중국은 코로나 와중에도 플러스 성장을 거두었다. 연례 최대 정치행사인 이번 양회에서 자신감을 보일만도 하였다. 그러나 총리의 보고는 길지 않았고 과감한 목표치 제시 찾기 어려웠다. 코로나라는 힘든 산은 거의 넘었지만 갈 길이 그만큼 험난하기 때문이다. 대내외 환경은 여전히 녹녹하지 않다. 경제의 질적 전환은 고통스럽고 미중 분쟁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중국은 양회를 통해 분명히 보여주었다. 대내외 환경의 어려움을 안정적 성장 유지, 자립적 기술혁신, 쌍순환 전략을 통해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 중국의 전략의 성패 여부를 당장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국의 고민은 더 깊어져야 한다. 중국의 자립적 기술혁신과 쌍순환 전략이 가져올 장기 파급 효과를 염두에 두고 대중국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중국은 이미 수십 년을 내다보는 전략을 수립하여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과연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