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이 총서기직을 3연임 함에 따라 중국의 대외정책은 사실상 1, 2기의 연속선상에 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2기 집권기에 중국이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의 강력한 견제에 직면했고, 따라서 국가정책의 최상위 목표, 즉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실현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졌다는 사실이다. 주지하듯, 시진핑 정부는 개혁개방 이후 ‘하나의 중심, 두 개의 기본점(一個中心, 兩個基本點)’에서의 하나의 중심, 즉 중국의 모든 대내외 정책의 최상위에 장기간 존재했던 ‘경제발전’ 목표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으로 대체시켰다. 이로써 40여년 남짓의 시간동안 경제성장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자 평화로운 대외환경 조성에 주력했던 중국의 외교는 시진핑 집권기 들어 전격 전환되었다. 2050년까지 미국을 제치고 국제사회의 최강대국으로 등극하는데 유리한 대외환경 조성 및 대국에 걸맞는 국가관계 및 국제위상을 구축하는 것으로 외교의 중점이 이동했던 것이다. 이것이 시정부의 소위 ‘중국 특색 대국외교’였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가 중국의 예상보다 더욱 빠르고 훨씬 강력한 견제에 직면하였다. 단순히 경제뿐 아니라 기술, 산업, 문화, 군사, 정치 등 각 분야에 걸친 미국의 전면적인 견제 및 유럽의 동참(A New EU-US Agenda for global change, 2020)은 중국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大견제의 시기’에 빠뜨렸다. 심각한 위기의식과 불안한 대외환경 속에서, 과거 덩샤오핑 시기부터 면면히 이어오던 “평화와 발전의 시대” 규정이 사라졌다. 대신 견제의 시기를 버티고 살아남기 위한 중국의 고민과 대외적 수싸움의 흔적이 이곳 저것에 녹아있다. 피아(彼我)구분의 대립적 세계관이 강해졌고, 기존 외교구도를 재정비함으로써 우군을 확보하면서도 외부의 견제에 말려들지 않으려는, 그러면서 내부의 체제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해외를 잇고 성장세를 이어나가려는 중국의 절박한 몸부림이 집권 3기에 이어질 전망이다.
[보고]는 과거에 비해 상당히 강화된 중국의 위기의식과 부정적인 시대인식을 표출하였다. 19차 당대회 보고는 과거 5년 평가시 “전방위적, 다층적, 입체적 외교 구조를 형성함으로써 나라 발전을 위한 양호한 외부조건을 조성하였다”며 일대일로, AIIB 발기, 실크로드 기금 설립, 일대일로국제협력정상포럼, APEC정상회의, G20항주정상회의, BRICS샤먼회담 등 성과를 열거하였다. 반면 [보고]에는 그런 내용은 다 빠지고, 국제 공평정의를 수호하고,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하며, 패권주의와 강권정치, 일방주의, 보호주의, 집단 따돌림에 반대했음을 적시하였다. “당중앙이 전당 전군 전국 각 민족 인민들로 하여금 엄중하고 복잡한 국제정세와 끊임없이 나타난 거대한 리스크의 도전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도록” 이끈 것이 가장 중요한 성과라는 것이다.
인류가 당면한 공동 도전과 문제에 대한 중국의 진단도 과거보다 복잡해졌다. 18차 때는 전 세계 금융위기, 강대국의 패권주의, 강권정치, 신간섭주의, 국제적인 혼란 그리고 지구적인 비전통 안보문제가 제시되었고, 19차 때는 전 세계적 불안정성, 불확정성, 경제침체, 빈부격차, 역내 핫이슈, 테러리즘, 인터넷 안보, 전염병, 기후변화 등이 제시되었다. 강대국에 대한 비판적 언급이 빠진 것이다. 그런데 [보고]는 팬데믹의 영향, 반세계화 사조, 일방주의, 보호주의, 세계경제 회복의 지체, 국부적 충돌과 불안정사태, 지구적 문제의 심화 등을 제시한 것 외에도, “자기 힘을 믿고 약자를 괴롭히며, 남의 재물·권리 따위를 교묘한 수단이나 힘으로 빼앗고, 제로섬 게임 등 패권적, 패도적, 집단 따돌림적 행위의 위해성이 심각하며, 평화 적자(赤字), 발전 적자, 안전 적자, 거버넌스 적자가 가중되고 있어, 인류사회가 미증유의 도전에 직면하였다”고 밝혔다. 즉 미국에 대한 부정적 표현을 자제했던 19차 때와 달리 매우 직설적이고 강한 어조로 미국을 다시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과거엔 중국이 비교적 객관적인 관점에서 인류의 현안을 인식했다면, 강한 압박과 견제에 직면한 지금의 시점에서 중국은 자신의 관점, 즉 자신이 당면한 도전을 공동이 당면한 도전으로 치환시킴으로써 주관성을 배가시켰다.
분열되고 적대적인 세계관이 심화되는 가운데 자신을 정의의 편으로, 미국 등 서방세계를 비도덕한 세력으로 구분 짓는 도덕적 레토릭도 과거에 비해 더욱 강해졌다. “세계는 또 다시 역사의 교차로에 서게 되었고, 어디로 갈지는 각국 인민들의 선택에 달렸다”며 정의로운 자신을 선택하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였다. 국제사회를 선과 악의 구도로 양분하며 자국의 정의로움을 강조하는 도덕적 레토릭과 자세는 3기 집권기에 더욱 강해질 전망이며, ‘인류운명공동체’ 담론은 더욱 힘을 받는 형국이다.
중국의 대국외교(大國外交)는 원래 ‘강대국, 즉 미국, 소련, 서방 선진국들을 대상(toward)’으로 하는 외교를 의미했지만, 국력의 강화에 따라 점차 ‘강대국이 된(as) 중국 자신의 외교’까지 포함하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시진핑 정부의 ‘중국특색 대국외교’는 강대국 대상 외교에서는 ‘신형 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제시하였고, 강대국으로서의 외교에서는 ‘책임지는 대국(負責任的大國)’ 면모를 부각하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전면적 압박과 바이든 집권기 EU의 중국견제 동참에 맞닥트림으로써 신형 대국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강대국 대상 외교는 사실상 실패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아울러 ‘일대일로’의 빚함정 오명, 백신외교에 대한 비판 및 전 세계 중국 여론의 악화로 인해 강대국으로서의 외교도 빛을 바랬다. ‘중국특색 대국외교’는 사실상 무색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시진핑 1, 2기 정부의 외교를 포괄하는 가장 중요한 틀이자 일종의 브랜드라는 점에서 [보고]는 과거 5년의 ‘중국특색 대국외교’가 성과를 얻었다며 자찬하였다.
[보고]는 향후 강대국 대상 외교 부분에서 ‘평화적 공존’과 ‘약한 고리 공략’에 중점을 두었다. “대국 간 조율과 양성적 상호작용을 촉진시키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전반적으로 안정되고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대국관계의 구도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고 하였는데 이는 19차 정치보고와 비교해 ‘협력’이 ‘양성적 상호작용’으로 톤다운 된 것이다. 협력은 안되더라도 충돌은 최대한 지양함으로써 강대국과의 안정된 관계 유지에 계속 주력할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대국관계의 구도”란 사실상 중국에 적대적인 강대국과 그렇지 않은 강대국을 구분하여 후자와의 관계 강화를 시도하겠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최대한 충돌하지 않되, 약한 고리를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시진핑 주석이 당대회 직후 독일 숄츠 총리와 회담을 갖고 무역과 경제협력을 중점적으로 논의한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제조업 강국인 독일과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EU의 중국견제 대오를 흔들겠다는 의도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일치단결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에 비해, EU의 여론은 양분될 수 있음을 중국은 잘 알고 있다.
대국으로서의 외교 관련, 시진핑 3기 정부는 서구와의 차별성 강조에 더욱 주력할 것이며, 이러한 맥락에서 ‘인류운명공동체’ 담론은 더욱 확대·강조될 것이다. 본 담론은 원래 시진핑 1기 정부가 주변외교의 위상을 크게 제고시키며 주변국을 대상으로 한 ‘운명공동체’ 담론으로 시작했다가, 이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인류운명공동체’로 개념이 확대된 것이다. 향후 분열된 세계 속의 피아구분적이고 현실적인 대처와 더불어 ‘중국특색 사회주의 국가’로서 숭고한 이념과 꿈을 드러내는 레토릭으로서 활용도가 더욱 커졌다. ‘중국특색 대국외교’가 단지 중국몽에 기여하는 자기이익 실현도구에 불과하다는, 사회주의 국가로서 듣기 다소 불편한 비판을 희석시키는데 유용할 뿐 아니라, 더 많은 우군을 확보하는데에도 활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보고]에는 개도국과의 관계 강화에 관한 내용이 다양한 맥락에서 풍부하게 담겨있다. 시진핑 3기 정부의 ‘개도국외교’와 ‘주변외교’는 2기보다 더욱 강화될 것이다. 18차 보고에서 강조된 ‘해양대국’ 용어가 19차 때 톤다운 되었다가 이번 [보고]에서 자취를 감추고, 안보 관련 부분에서 “해양권익을 수호한다” 정도로 처리된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해석 가능하다. 주변에 위치한 동남아 개도국들의 경각심을 완화하고 관계를 강화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이처럼 중국이 개도국과의 관계 강화를 중시하는 이유는 국제사회 및 주요 기구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개도국을 자국진영화 함으로써 미국 중심의 반(反)중국 진영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미국은 특히 WTO, G7, G20, TTC 등을 중국견제의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보고]는 UN뿐 아니라 WTO, APEC 등 다자간 기제가 역할을 더욱 잘 발휘하도록 추진하고, 자국이 주도하는 BRICS, SCO 등 협력기제의 영향력을 확대하며, 글로벌 사안에 대한 신흥시장 국가와 개도국의 대표성 및 발언권을 증대시킬 것이라 명기함으로써, 개도국과 연대하여 국제기구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의도를 드러냈다. 최근 서방이 주도한 50개 국가가 유엔 총회에서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 인권 침해를 규탄하는 성명을 내자 중국 정부가 “거의 100개 국가가 유엔에서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 중국을 지지한다”고 주장한 것이 사례라 할 수 있다. 19차 때와 비교시, [보고]에서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의 개혁 참여 관련 내용이 늘었고, 내용도 구체화 된 것으로 미뤄보아 향후 중국의 다자외교도 상당히 강화될 것으로 예측 가능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개도국을 대하는 중국의 관계구도 설정이 과거에 비해 보다 위계화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보고]에는 19차 보고에는 없는 “개도국의 공동이익을 수호하겠다”는 표현이 첨가되었다. 이것을 중국의 자기 정체성 변화와 연관지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차 정치보고에서 중국은 스스로를 ‘세계 최대의 개도국’이라고 언급했지만, 이번 [보고]에는 그러한 표현이 사라졌다. 과거 모택동 시기 중국이 소련과 미국과 동시 저항하는 과정에서 제3세계를 끌어안음으로써 외교공간을 확보한 것은 개도국 정체성에 기반하여 개도국과의 수평적 연대를 표명했던 것이었다면, 이제는 중국이 강대국 정체성을 가지고 개도국과의 상·하관계를 스스로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19차에는 나타났던 비동맹 입장이 [보고]에서 사라졌다는 사실과도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동반자 관계를 맺되 동맹은 맺지 않는다(結伴而不結盟)’는 표현은 사라지고, 동반자 관계를 중시한다는 의미의 표현은 거듭 등장하였다. 사실상 중국은 러시아와 군사훈련을 정기적으로 실행함으로써 넓은 의미의 동맹에 해당하는 행태를 보이면서도, 공식적으로는 동맹에 반대한다는 이중적 입장을 취해왔다. 중국의 대표적인 현실주의자인 옌쉐통(閻學通) 교수는 ‘러시아가 동맹을 냉전의 유산이라 비판하면서도 사실상 동맹을 맺고 있다’고 지적하며, 중국도 미국을 대체하는 최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개도국들과 군사동맹을 맺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안보가 불안한 개도국들의 안보불안을 해소해줌으로써 권위를 얻고 신국제질서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해볼 또 하나의 현상은 19차 보고에서 대외정책을 다룬 챕터의 제목은 ‘평화발전의 길을 견지하고, 인류운명공동체 구축을 추진한다’였는데 [보고]에서 ‘세계평화와 발전을 촉진하고, 인류운명공동체 구축을 추진한다’로 바뀐 것이다. 즉 ‘평화발전의 길을 걷겠다’가 ‘세계평화와 발전을 촉진하겠다’는 입장으로 미묘하게 바뀌었다. 평화를 원하지만, 필요하다면 평화를 희생시키고 무력을 동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금처럼 중국의 군사력이 계속 빠르게 강화되고, 아프리카 지부티에 첫 해외 군사기지를 설립하는 등의 해외확장 추세가 지속된다면, 향후 중국과 다수의 개도국들 간 군사적 유대관계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겉으로는 중국이 강대국으로서 빈국과 개도국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포장되겠지만, 사실상 빈국과 개도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될 뿐 아니라 국제 안보구도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점에서 향후 추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차 보고에 처음 등장한 ‘중국식 현대화’는 미국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국내 제 분야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것에 중점이 있으며, 대외적으로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보고는 “지금부터 중국공산당의 중심임무는 바로 전국 각민족 인민을 단결시키고 인도하여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전면적으로 건설하고, 두 번째 백년의 분투목표를 실현하는 것이다.”라며 이를 위한 방식으로 ‘중국식 현대화’를 제시하였다. 미래 5년을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의 전면적 건설을 위해 국면을 열고 발을 내딛는(開局起步) 관건시기”라고 규정하며 제시한 대부분의 임무, 즉 경제의 고품질 발전, 과학기술의 자립자강, 신발전구조, 현대화 경제체제 건설, 국가 거버넌스 체계와 거버넌스 능력 현대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 개방형 경제 신체제, 전과정 인민민주의 제도화, 규범화, 체계화,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법치체계, 기본 공공 서비스의 균등화, 다층적 사회보장체제, 아름다운 중국 건설의 효율성, 건군 백년의 분투목표 등은 모두 국내체제 전반의 경쟁력 제고와 직결되는 것들이다.
2007년 미국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가 중국을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침해하는 국가로 규정하고, 다음 해인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발하며 서구 모델의 취약성과 한계가 드러난 이후 2009년 중국에서 “체제의 경쟁력(優勢)”이란 개념이 처음 등장하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백악관 보고서를 통해 미중관계를 두 체제 간 장기적 전략경쟁관계로 규정하자 중국학계와 사회에서도 미중경쟁은 더 이상 경제성장률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체제경쟁력을 둘러싼 경쟁이며,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라는 응전의 심리가 형성되었다. 이번 [보고]에서 소강사회의 실현을 치하한 것, 또한 예전에 없던 과학기술 부분이 5장에 새로 삽입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은 첨단기술 등 중국의 경제/산업/과학기술의 혁신과 고도화에 필요한 외부자원 공급을 차단하기 위해 동맹을 규합하고 있고, EU도 가세하기 시작했다. “교육, 과학기술, 인재는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의 전면적 건설을 지탱하는 기반이자 전략이다. 반드시 과학기술이 제일 생산력, 인재가 제일 자원, 혁신이 제일 동력이 되도록 해야한다.”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 체제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려는 절박한 목소리이다.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가 강한 경쟁력을 갖추게 되면 이는 중국의 대외환경 개선에 다음과 같은 실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첫째, 개도국들에게 중국모델의 우수성을 선보이고 전파함으로써 자국의 권위와 영향력을 제고시킬 수 있다. 소위 민주를 강요하고 내정을 간섭하는 미국이 아닌, 중국의 편으로 끌어오는데 더욱 유리하며, 이는 결국 미국 중심적 기존 글로벌 거버넌스를 중국에 유리하게 재편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둘째, ‘쌍순환 전략’은 우선 국내순환, 즉 국내의 거대한 수요에 기반한 내재적 활력과 역량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반드시 해외 양질의 기술 및 자본과의 결합을 요구한다. 중국 체제 전반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활력이 돌면서 시장이 생성되면, 이는 해외 유수 대기업들로 하여금 자국 정부의 입장과 무관하게 중국시장에 접근하고 투자하려는 더욱 강한 욕구를 갖도록 유도할 수 있다. 한가지 더 주목하자면, 첨단과학기술의 자립자강 실현을 가속화하고 국가 전략의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독창성 있고 지도력 있는 과학기술 확보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문구이다. 이는 중국이 미국 중심적 규범이나 질서가 기구축돼있지 않는 신흥기술 분야에 향후 더욱 주력할 것임을 의미한다. 이미 배터리, 태양광, 빅데이터 등 신흥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강세가 두드러지는 가운데, 향후 미국 기술패권의 공백을 파고드는 중국과 이를 막으려는 미국 간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펠로시 하원의장의 대만방문이후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높다. [보고]에서 19차 때 없었던 ‘무력사용 가능’ 언급이 공식 등장한 것에 대하여 대만해협 전쟁 시간표가 빨라진 것이라는 일각의 해석이 있다. 그러나 이는 대만문제의 민감성이 제고되는 시점을 맞아 중국이 대만인의 여론 분열을 획책하고 이슈의 조기 점화를 경계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홍콩사태 이후 독립을 선호하는 대만내 여론이 확산되는 추세는 중국의 통일 추구에 불리할 뿐 아니라,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기에 중국으로선 큰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중국에게 양안통일은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목표이지만, 시간표는 길게 잡아 2050년까지이며, 그 전에 미처 확실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만문제가 불거져 무력충돌이 발발하는 사태는 제재국면을 헤쳐나가야 하는 중국에게 치명적이다. 지금 같이 민감한 시기에 대만에게 무력을 감행할 경우, 서방국가와 국제사회에 중국이 러시아와 같은 권위주의의 축(axis)으로 인식되는 빌미를 제공함으로써 중국이 전 세계의 제재대상이 될 수 있다. 중국의 지속 성장 보장에 필수적인 반도체 등 첨단기술과 자본을 제공 받을 수 있는(국내와 국제의 순환) 대만은 물론이고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도 파탄날 수 있다.
대만과의 통일 실현에 필요한 압도적인 군사력과 확실한 국방능력이 아직 담보되지 않은 현시점에서 대만이슈의 조기 점화는 중국몽 실현에 막대한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중국이 원하는 시나리오가 아니다. 대만 독립이슈가 불거졌을 때 만일 무력한 모습을 보인다면 중국공산당은 국내여론의 강한 역풍에도 직면하며 집권 명분에서 치명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이 “최대한의 성의,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 평화통일의 앞날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무력사용을 포기한다고 절대 승낙하지 않으며, 필요한 모든 조치의 선택지를 보류할 것이다. 이것은 외부세력의 간섭, 극소수의 대만독립 분리분자 및 그들의 분열활동을 겨눈 것이지, 절대로 광대한 대만동포를 견준 것이 아니다”에는 대만국민들의 여론을 분열시킴으로써 2024년 초 대선을 계기로 대만독립 이슈가 국제사회에 점화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려는 중국의 의도가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