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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아진 세계, 멀어진 관계 속 중국의 자력 아닌 자력갱생 쫓기
서정경(서울대학교)
5년의 임기 내 통상 7번 치러지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중에서 6번째 개최되는 6중전회는 기본적으로 외교와 무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6중전회에서 통과된 <당의 100년 분투 중대성과와 역사경험에 대한 결의>(이하 역사결의) 및 관련 문서를 살펴보면 향후 중국의 외교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첫째, 시진핑 집권기 새롭게 나타난 중국 외교의 기조는 악화된 대외환경 속에서도 일정한 조정을 거쳐 지속될 것이다. 둘째, 보다 본질적인 문제로서, 소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기치 아래 시진핑을 중앙의 핵심이자 최정점으로 하는 중국공산당의 “투쟁”적 서사와 행태는 대외적으로도 지속·강화될 전망이다.
미국과 서구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미국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와는 다른 “중국의 길”로 간다는 의지는 더욱 단호해졌다. 미국 및 서구의 반발, 더 나아가 전 세계 중국 이미지의 보편적 악화를 초래한 것에 대한 진지한 자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는 21세기 국제질서의 변화와 미래 예측의 불투명성을 가중시킨다. 21세기 미중 간 패권 다툼은 과거 사례와 비교해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 한 나라의 규모만도 과거 유럽을 제패한 로마제국(Pax Romana)보다 더 크다. 그런 중국과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 세계 오대양 육대주를 대상으로 패권체제를 확립한 미국 간의 세력 경쟁이다. 거기에 유럽도 바이든 행정부와 손발을 맞춰 대중 견제 전선에 합류하였다. 팬데믹 시기 강함과 유능함을 강조하는 시주석 치하의 중국은 과거 어느 때보다 고양된 민족주의 정서를 지닌 자국민을 통제하면서도 만족시켜야 한다. 대외적으로 보다 유연하고 타협적인 외교로의 선회 가능성이 제약되는 대목이다.
대외환경 악화와 위기의식의 고양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의 외교는 전임 정부보다 더욱 단호하고 공세적으로 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집권 초기 ‘핵심 이익’ 강조, 매우 과감하고 전략적인 ‘일대일로’ 구상 제시와 대대적 추진, 국방개혁의 강한 드라이브 및 강군 육성, 미국에게 평등한 관계를 선제적으로 요청한 ‘신형대국관계’ 제시와 그 대상을 전 세계로 확대시킨 ‘신형국제관계론’, 거기에 ‘인류운명공동체론’ 까지, 시진핑 집권기 중국의 외교는 “중국 특색(有中國特色的)”의 모자를 쓰고 그야말로 국제사회에 “과거보다 강한 자신”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질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그러한 질주가 중국의 예상보다 빠르게 그리고 매우 강력한 외부의 저항에 직면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의 보다 체계적인 대 중국 견제진영에 유럽과 일본이 편승하기 시작한 것은 중국특색 강대국 외교의 사실상 실패를 의미한다. EU는 중국의 국가 주도적 경제체제의 불공정성과 시장 왜곡을 콕 집어 비판했다. 나토정상회의는 중국이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 및 동맹안보 관련 영역에 구조적 위협(systemic challenge)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탈냉전기 뚜렷한 공동의 적이 사라진 후 기존 제도와 관습, 레짐의 생명력에 힘입어 겨우 유지돼오던 나토가 중국이라는 공동의 가상 적국을 재발견한 것이다. 유럽의회는 또한 대만과의 정치관계 및 협력에 관한 보고서를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키며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번 역사결의에는 “당중앙은 외부의 각종 포위, 억압, 교란, 전복 책동에 직면하여 위협공갈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을 발양한다. 중국공산당의 영도와 우리나라 사회주의 제도의 전복을 시도하거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과정을 지연, 심지어 저지하려 시도하는 모든 세력에 끝까지 맞서 싸워야 한다.”고 적시돼있다. 이는 기실 중국 대중들의 사기를 고취시키기 위함이지만 당내외에 상당히 증폭된 지도부의 위기의식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중국의 위기의식은 이번 역사결의에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환영받는 국제 공공재이자 국제협력 플랫홈”이라 자화자찬된 일대일로가 사실상 일정하게 축소된 현실에서도 알 수 있다. 올해 개최됐어야 하는 일대일로정상회담은 팬데믹과 국제사회의 부정적 여론 등을 감안하여 최종 무산되었다. 11월에 개최된 제3차 일대일로건설좌담회도 발언자 수가 과거 2016년, 2018년의 9명에서 7명으로, 발언한 성급 당위원회 서기도 4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 시주석은 “이익을 쫓고 손해를 피하며, 용감하게 전진하라(趨利避害,奮勇前進)”고 했지만 동시에 리스크 관리의 전면적 강화도 강조했다.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아 중국은 해외 진출에 더욱 신중해질 것이며, 경제적 이익을 쫓거나 해외 생산기지 개척 등 글로벌 공급망과 연결되려는 동기보다는 민감한 물류 요충지 연결이나 에너지 안보 확보 등의 전략적 목적에 다소 국한되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전략적 부담이 덜한 보건 실크로드와 디지털 실크로드의 확대 및 강화로 무게 중심이 전환되고 있다.
혼자는 어려운 자력갱생
미국과 서구의 압박에 대처하기 위한 중국의 외교적 수단 중 하나는 글로벌 거버넌스 무대에서 역량을 모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 다수의 개도국을 반드시 자신의 편에 세워야 한다. 과거 자신이 대만을 유엔에서 축출하고 지위를 얻은 건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들의 전폭적 지지에 힘입어 표대결에서 승리했기에 가능했음을 기억하고 있다. 코로나 19 대응 관련 WHO가 친중 논란에 휩싸인 것 외에도 UN을 둘러싼 진영 간 대결도 치열해지고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서구 중심 27개국의 유엔 선언은 이후 쿠바가 이끈 53개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환영 성명에 의해 무색해졌다. 미국의 ‘민주주의 정상회의’ 개최 움직임에 대해 중국이 오늘날 세계에 절박하게 필요한건 소위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아니라 유엔헌장을 기반으로 한 국제관계 준칙 준수라고 응수한 것은 자국의 대 유엔 영향력을 자신하기 때문이다. G20 정상회의 직후 미국이 공급망회복을 위한 정상회의를 소집하자 중국이 WTO 주도의 회복력 있고 안정적인 산업 공급망에 대한 국제포럼을 제안한 것 역시 WTO에 새롭게 포진한 다수의 개도국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이러한 대응은 지구적 공동문제의 해결이라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본 취지에서 출발하기보다는 미국과 서구의 대중 압박에 대처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점에서 적지 않은 우려가 존재한다. 국제세력 구도의 변화에 따른 중국의 전략적 대응이자 자국의 강대국화 추진의 일환이며, 특히 미국의 전면 압박과 팬데믹이라는 미증유의 이중 압박에 대처하기 위한 필사적인 전략적 행태라는 점이다. 미국 역시 자국 중심적 거버넌스를 선호하며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을 동원한 세력화를 시도한다. 이로 인한 미중 간 전략적 경쟁과 대립의 심화는 물론이고, 국제무대에서 중국이 이끄는 제3세계 vs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세계 간 대립이 종종 연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강화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할 때, 오늘날 기후위기나 팬데믹을 포함한 지구적 과제에 글로벌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기만 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경제적 상호의존이 상대의 목을 조를 수 있는 전략적 무기가 된 오늘날 중국이 “자력갱생”을 위해 오히려 미국보다 더 적극적으로 디커플링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식 표준을 만들고 자국 중심적 공급망을 형성하려는 움직임과 동시에 스스로를 미국 중심적 공급망에서 분리시키고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기간동안엔 “쌍순환” 전략 즉 국내의 거대한 내수시장에 기대어 버티겠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반드시 국내와 국제를 연결하는 순환 사이클이 필요하다. 한국과 같이 기술과 노하우를 지닌 중견 강국들을 최대한 끌어와야 하지만 실상은 녹녹하지 않다. 바이든 시기 미국의 동맹 강화를 통한 “중국 때리기”가 강화되고 있고, 권위주의 강화와 공세적 외교에 따른 국제사회의 반중정서가 중국으로의 구심력을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중국은 미국 등 강대국이 임의대로 거칠게 대하기엔 이미 국제사회에서 G2로 간주될 정도로 상당한 역량과 입지를 구축했다. 미 통상대표부(USTR)의 타이(Katherine Tai) 대표가 ‘트럼프 행정부는 탈동조화(decoupling)를 목표로 했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재동조화(recoupling)를 추구한다’고 발언한 것은 GVC 내 무시할 수 없는 중국의 존재를 인정한 결과이다. 미국 주도의 GVC 속에서 핵심 시장이자 제조기지로 성장한 중국을 기존 GVC에서 완전히 떨궈낼 경우 미국이 입게 될 경제적 손해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이득 때문에 양국 간 협력무드가 강화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미 단순한 무역적자 문제가 아닌 산업 경쟁력과 기술문제를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기술에 근거한 산업화에서 나의 비교우위를 높이려는 경쟁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여러 첨단 기술 자체를 내 것과 남의 것으로 나누고 서로 다투는 상황의 도래는 미중 간 신뢰 및 합의 도출이 근본적으로 과거에 비해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반중정서와 대중 견제 진영을 촉발한 홍콩과 대만 이슈: 해결책이 안보인다
이번 ‘역사 결의’에서는 홍콩문제와 관련하여 “한 시기 동안에 각종 복잡한 국내외 요소의 영향으로 “반중국 홍콩교란(反中亂港)” 책동이 창궐함으로써 홍콩 정세가 준엄한 국면에 놓였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홍콩문제를 ‘내정’으로 간주하지만 사실상 이는 대만문제와 연결되었을 뿐 아니라 중국의 대외환경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홍콩 국가보안법 통과 이후 국제사회에 중국의 비민주성에 대한 경각심은 증폭되었고, 차이잉원 행정부에 대한 대만 민중들의 지지도는 대폭 상승하였다. 미국은 이를 틈타 대만과의 관계를 적극 강화하고 있고, 대만은 CPTPP에 가입하기 위해 총력 외교전을 펼치는 등, 양안을 둘러싼 위기 수위가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특히 차이잉원이 최근 대만내 미군의 존재를 공식 인정한 것은 사실상 중국의 입장에서 미국이 레드라인을 넘은 것이다. 미군의 대만 철수는 마오쩌둥 시기 미중 국교 수립의 세 가지 전제(대만과 단교, 철군, 조약 폐기) 중 하나였다. 중국공산당의 입장에서 대만 상실은 근대시기 굴욕의 경험 그 자체이며, 대만 수복은 중국공산당의 위신 및 생존 가치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전제는 국토의 완전한 통일이며 대만 독립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할 핵심사안이다. 겉으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천명하면서 실제로는 원칙을 위반하는 미국과 유럽의 전략적 행태 속에서 중국은 이제 자신의 가장 기본이자 핵심이익을 지키기 위한 비용조차도 증대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좁아진 세계, 멀어진 관계
오늘날 국가 간 연결과 상호 작용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최첨단 기술과 도구로 뒷받침되며 인류는 역사상 가장 타자와의 밀접하고도 즉각적인 상호 작용이 이뤄지는 좁아진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이 가운데 중국과 서방세력 간 경쟁은 인류의 삶의 패턴에 일대 혁신을 가져올 최첨단 기술분야 외에도 제도, 가치관, 표준 등 영역에서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더욱이 이질적 문명과 인종 및 이데올로기적 대립의 성격까지 띤다는 점에서 중국과 국제사회 간 거리는 상당히 멀어졌다. 미국의 권위있는 전문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의 2020, 2021년 여론조사는 물론이고, 싱가폴 ISEAS의 2021년 여론조사는 중국과 국제사회의 심리적 거리가 꽤 멀다는 사실을 자명하게 보여주었다. 국제사회에 공공재로서 제공한 막대한 중국산 백신과 구호품 등의 물질이 사람의 마음을 사는데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는 평범한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시진핑 시기 중국 외교의 이론과 실천의 핵심 가치이자 행동 강령으로 등극한 “인류운명공동체”는 앞으로도 계속 외쳐지겠지만 현실은 공허한 울림일 수 있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장과 행태는 민주, 공화 양당의 일치된 컨센서스 아래 향후에도 오랜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사실상 트럼프 시기 중국에 대한 보복조치가 가능했던 모든 법적 기반은 민주당 정권인 오바마 집권기에 만들어진 것이었고, 오늘날 바이든 행정부는 공화당이 집권한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외교 유산의 상당부분을 계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중국 국가-사회 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중국이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할 수 있을까? 문제는 중국이 “외부의 적” 개념을 동원하며 사회를 강하게 억누르는 상황 속에서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도가 언제까지 강고하게 유지될 것인가이다. 물론 현재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중국 내부의 긍정적 평가는 공산당 집권에 대한 높은 지지도로 나타난다. 하지만 미국과 서구의 공동 압박에 따른 중국 내부 규제의 지속적 강화, 그리고 그에 따른 경제 사회적 상황의 악화는 향후 대중들의 불만을 점차 가중시킬 수 있다. 이에 대해 중국공산당이 취할 수 있는 대응책은 최고 지도자의 권위를 더욱 강화하고, 대중들의 사상을 ‘통일’시키기 위해 사회를 더욱 강하게 옥죄는 것이다. 이는 다시 대중들의 불만을 누적시킬 것이고, 그러면 공산당 지도부는 대외적으로 더욱 강경하고도 불굴의 투쟁 이미지를 자국민에게 보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진핑 영도의 공산당 치하에 대한 사회의 불만 증대에 더하여, 미국 등 서방세계의 반중세력에 대한 중국 대중의 불안감과 분노가 합해질 경우, 아울러 국제사회의 반중정서가 지속적으로 확산될 경우, 국내와 해외 모두와 멀어진 중국이 나아갈 방향이 어디일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길이 과연 어디일지 현재로서는 누구도 확언하기 어렵다.
[사진 출처] Rowan Callick, Xi Jinping launches a New Era for China and the World, <<IDEES>>, 2021.04.15.